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대표적인 독립 운동가이자 천도교조였던 손병희 선생의 집이 헐릴 위기에 놓였다.
수청동에 위치한 손병희 선생의 집은 손병희 선생이 해월신사 순도이후인 1898년 8월부터 1899년 10월까지 1년 3개월 동안 머물렀다고 교단기록에 전해져 왔다.
수청2지구 개발구역에 남아있는 손병희 선생의 집은 2012년 발견됐으며 개발을 앞둔 현재는 충남개발공사 소유로 등록돼 있다.
고택은 평지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뒷산은 큰 소나무가 무성하고 집 주위로 왕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집 마당에는 대나무가 뻗어있고 담벼락이 무너지는 등 관리가 시급한 상태지만 발견된 이후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되어 있다.
또한 문은 다 떨어지고 마루가 다 부서져있는 등 폐가 수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발견 전에는 개인소유였기 때문에 냉장고와 운동화 등도 버려져있어 손병희 선생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도 없다.
의암성사 고택은 아직 문화재적 가치를 판단하지 못한 매장문화재로, 그동안 당진시와 당진문화연대에서 지지대 설치 등 일부 보수 및 관리를 해왔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지표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보존하게 되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될 시에는 수청2지구 개발구역에 포함돼 철거하게 된다.
조재형 당진문화연대 회장은 집이 헐리게 될 경우 손병희 선생의 집과 내포지역 동학혁명군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유일하게 승리한 곳인 승전목, 심훈 선생과 막역한 사이였던 예산 출신 박헌영 등의 연결고리를 이용해 형성된 내포지역의 동학농민운동 네트워크가 끊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REP▶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당진시와 당진시민들의 관심이 적어 안타까운데요. 손병희 선생의 집을 보존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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