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호국인물 남이흥(南以興) 장군 현양행사가 지난 6일 전쟁 기념관에서 거행됐다.
이날 현양행사는 전쟁기념관장 선영재 관장의 주관으로 김문상 당진교육장, 정정희 당진문화원장, 4.4독립 만세운동 기념 사업회 최규범 회장, 남이흥장군 문화제 임원과 문화원 회원들 장군의 후손 및 서울 인근각지에 많은 유족들과 학계 인사까지 참석해 전쟁기념관 개관이래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현양행사는 1, 2부로 1부에서는 남이흥 장군의 업적 소개를 시작으로 군악대의 반주에 맞춰 애국가 제창, 남이흥 장군에 대한 묵념을 다른 행사와 달리 군악대 나팔소리와 함께 오랜 시간 장엄하고 진지하게 진행됐으며 헌화분양이 이어졌다. 헌화 분향에는 군인에 의해 꽃바구니를 남이흥 장군의 영정 앞에 올려졌다.
이어 2부에선 14대 종손에게 남이흥 장군 공적패 전달과 충장 공파 남기충 회장의 친족 대표 인사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날 참석한 전쟁기념관 선영재 관장은 “애국 애족정신 선양은 바로 우리의 일이고 우리 후손들이 꼭 선양되고 본받아야할 과제”라며 현재 절실히 요구되는 국가관에 대해 말했다.
한편 이달의 호국인물은 우리나라가 가장 어려울 때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위훈을 기리고 현양하기 위해 1995년부터 선정해 왔으며 국사편찬위원회, 학술단체, 각 군 본부, 경찰 등 관련기관과 단체로부터의 추천을 받아 중앙심의위원회의 공정한 심의를 거쳐 선정하고 있다.
남이흥(南以興) 장군은
1576년 나주목사 남유(南瑜)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의령, 자는 사호(士豪), 호는 성은(城隱)이다.
27세이던 1602년 무과에 급제해 선전관을 거쳐 부총관, 포도대장, 경상도병마절도사, 안주목사, 평안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했다. 1624년 이괄이 난을 평정해 진무공신 1등에 책훈되고 의춘군에 봉해졌다.
평안도병마절도사로서 영변부사를 겸해 국경 방어의 임무를 맡고 있던 중,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 안주성 전투에서 최후까지 항전하다 적군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장군의 장례 때 인조 임금은 입었던 옷을 벗어 관 위에 덮어주며 애도했으며,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좌의정에 증직하고, 정1품 의춘부원군에 추봉했다. 평안도 안주의 충민사(忠愍祠)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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