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나 쇠로 만든 볼라드는 모두 불법
당진 시내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무릎 높이의 말뚝, 자동차의 진입을 막기 위해 설치된 말뚝 대부분이 사실은 설치기준에 어긋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3월 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볼라드)는 국토교통부령에 따라 밝은 색의 반사도료를 사용하여 차량운전자와 보행자가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보행자 등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료로, 속도가 낮은 자동차의 충격을 견딜 수 있는 구조로 해야 한다. 또, 높이 80~100cm, 지름 10~20cm로 규격이 정해져 있다.
차량의 무방비진입을 더욱 효과적으로 방지해 교통사고를 막고, 보행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이 같은 설치기준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당진시를 포함해 많은 지자체들이 이 설치기준을 따르지 않는, 사실상 따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 따로 현실 따로, 법 지키고 싶어도 예산 없어 ‘못 해’
현행법이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만들어진 볼라드는 단가만 36만원. 기존 석재, 철재 소재의 볼라드 단가보다 2배 가량 많은 액수이다. 유지보수에도 금전적 부담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격을 흡수하는 탄성 소재로 만들어져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부서지거나 무너지기 때문이다.
현재 당진시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불법’ 볼라드가 깔려 있다. 이 볼라드들을 모두 제거하고 새 볼라드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추산조차 되지 않은 실정이다. 관할 부서인 당진시청 도시과 도시시설팀 측은 아직 설계용역도 내려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실태가 이러한데도 설계용역도 맡기지 않은 이유는 역시나 예산문제였다. 2013년 한 해 동안 당진시내 시설물 유지보수비로 도시과 도시시설팀이 받은 예산은 10억원으로, 각종 안내판과 보도블록 설치, 차선 도색 등 당진시내 모든 시설물을 유지, 보수해야하는 비용이다. 이 예산도 차선 도색을 위해 기존 5억여 원에서 5억원 가량 더 증액한 예산이라고 도시시설팀 측은 전했다.
심지어 지난 당진시의회 정례회 결과 올 2014년도에 책정된 유지보수비는 3억원에 지나지 않아 올해도 볼라드 재설치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현실성 없는 법 개정으로 ‘활자뿐인 법’ 양산… 법치질서 좀먹어
볼라드 관련 법은 예산 문제 뿐 아니라 구체적인 준수 방법에 대해서도 불친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의 [별표2]에 나온 시설기준 가운데 ‘보행자 등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되, 속도가 낮은 자동차의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구조로 하여야 한다.’라는 규정은 그 자체로 기준이 애매모호한 실정이다. 보행자의 충격을 흡수하되 속도가 낮은 자동차의 충격에 견딜 수 있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 역학 기준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기준에 맞는 볼라드를 제작할 수 있느냐는 것이 지자체 관계자의 입장이다. 공장 역시 설치기준에 비슷한 수준으로 제작하는 데 그쳐 실제로 이것이 보행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셈이다.
이렇듯 현실 적용성이 떨어지는 애매한 법조문들은 결국 본래 취지도 실현하지 못한 채 활자로만 존재하는 허수아비 법이 되고 만다. 이런 법들이 늘어갈 수록 법이 가지는 위신이 떨어지고 종래에는 법치질서를 좀먹는 무법사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당진시청에서는...
취재진의 면담 결과 당진시청 도로과 도로시설팀 측은 관련 민원과 언론의 기고가 이어지는 만큼 추경에서라도 예산확보에 나서 우선 설계용역을 통해 당진시내 볼라드 교체 예산을 책정하겠다고 밝혔다. 책정되는 예산 규모에 따라 연한을 두고 차근차근 시행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시내 시설물 유지, 보수 수준은 그 도시의 위상과도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예산 확보와 보수공사 시행을 위해 지자체의 노력뿐 아니라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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